[현장에서]
이종섭 호주대사 출국금지 호주 현장 취재기
“갔노라, 보았노라, 기록했노라”
카메라에 눈이 쏠렸다.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평화로운 3월 10일 일요일 인천공항에 기자들이 몰렸다. 게이트마다 한 팀씩 자리를 잡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지난 3월 8일 금요일 출국 금지 조치가 해제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취재기자들은 마이크를 쥐고 질문을 검토했고, 영상기자들은 녹화 버튼 위에 검지를 올려둔 채 신경을 곤두세웠다.
“언제쯤 온답니까?” 한자리에서 적어도 3시간을 기다린 공항보안직원이 한숨을 내쉬며 동료에게 속삭였다. 오후 4시 50분 그는 아직도 공항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슬슬 준비해야 했다. 출국장을 통과해 탑승구로 가기 전 첫 번째 입구에서 조용히 그를 기다렸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이미 들어온 건 아닐까?’하는 작은 의심이 뇌리를 스쳤고,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직 안 왔습니다.” 오후 6시가 넘어서 공항 로비에서 대기하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의심은 머지않아 확신으로 바뀌었다. 공항보안직원들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고, 이 모습은 그가 이미 들어왔다는 가정에 더욱 힘을 실었다. 우리는 위치를 나눴다. 취재기자와 오디오맨이 최후의 보루인 탑승구를 맡았고, 나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있을 만한 위치로 향했다. 식당이 몰린 곳과 면세점, 대한항공 라운지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이 엄습했고 ‘에이 설마 안 오겠어?’를 되뇌었다.
탑승수속이 마감되기 5분 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의 첫 접선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탑승구 대기 장소에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 등장했다. 빠른 걸음으로 탑승구를 향하던 그는 취재진이 붙잡고 질문하자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말한 뒤 등을 보였다. 공항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은 따돌렸지만, 끝까지 쫓아간 우리를 따돌릴 순 없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다시 만난 곳은 브리즈번 공항이었다. 인천공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는 인력을 나누지 않고 캔버라행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같은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탓에 이번에 만나지 못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이번에도 모든 승객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전과 같았다. “아이고 여기까지 오고 그랬어요? 제 입장은 여러 차례 얘기했기 때문에..”
두 번의 기다림과 두 번의 만남. 우리는 여전히 답을 듣지 못했다. 브리즈번에서 캔버라로 이동 후, 공식적인 인터뷰 요청을 위해 주호주 대한민국 대사관을 찾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짧은 답변뿐이었다. 공식적인 인터뷰는 거절, 대사관을 찾아간 날은 휴무일이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남은 방법은 한가지였다. 출근 시간에 대사관저로 찾아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질문하는 것뿐이었다.
다음 날 새벽 6시, 우리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태양보다 먼저 고개를 치켜들고 대사관저로 향했다. 대사관저 맞은편 공원에 차를 주차한 뒤, 카메라를 설치하고 지켜봤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태울 차량의 출입 경로를 분석하기 위해 액션캠을 가방에 달고 대사관저 앞을 서성였다. 오전 8시 30분이 넘어가자, 각국의 외교관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쪽 귀에 무선 이어폰을 장착하고 건너편에서 대사관저를 지켜보고 있는 오디오맨과 통화하며 카메라 녹화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대사관저 대문 앞에서 한 여성이 밖을 둘러봤고, 우리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곧 나올 것을 직감했다.
“(원철)선배, 이종섭 대사 나옵니다. 어, 어...?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상문)선배, 차량 바로 탔다는데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대사관저에서 나오자마자 차량에 바로 탑승해 출발했다. 나와 취재기자 선배는 질문할 겨를도 없이 출구로 나가는 차량을 향해 달렸다. “대사님! 대사님!” 카메라 앵글이 미친 듯이 울렁거렸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달렸지만, 그런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결국,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몸을 반대쪽으로 돌린 채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3번의 기다림과 3번의 만남. 결국, 아무 답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급하게 출국하는 모습, 기자를 피하는 모습 등의 영상이 남았고 이를 국민에게 전할 수 있었다. 대답 한마디 없던 영상은 오히려 그 자체로 대답이 됐고, ‘역사’로 기록됐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끝까지 쫓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값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이번에도 현장에서 쓰였다.
영상으로 기록한다는 것. 영상기자의 일이다. 일이면서 책임이 따른다. ‘현장에서 영상으로 기록한다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그리고 책무를 온전히 이뤄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영상기자로서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상기자의 현장은 계속해서 제한되고 있다. 공항 탑승구에서 출국장으로, 출국장에서 공항 로비로. 나중엔 출국장이 아닌 공항 입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장을 쫓아가길 주저하지 않는다면 우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갔노라, 보았노라, 기록했노라”. 스스로 당당했던 카이사르처럼 말이다.
MBC 허원철 기자